국내선 기내에 있는 잡지를 읽던 중 흥미로운 문구가 보여 사진을 찍었다.
영문과 국문이 함께 제시되는데 보통 한국어 버전과 영문 버전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국문과 영문의 뉘앙스를 100% 맞추기 어려워 각 언어 정서에 맞게 약간 다르게 쓸 수 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아래와 같은 한국식 정서를 추가한 데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이 들었다.
영문: The Columbian-born musician who lifted the standing of Latin pop on music charts across the world has faced change with grace and perseverance. With her cathcy songs and dance abilities, Shakira continues to mesmerize well after her debut.
국문: 콜롬비아 출신의 샤키라는 전 세계 음악 차트에서 라틴 팝의 위상을 바꾼 뮤지션이다. 어떤 변화에도 공백이나 부침이 없는 그녀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도록”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고 건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노래하고 춤춘다.
영문 버전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다. 국문 버전을 아래와 같이만 쓰더라도 충분히 메세지가 전달이 된다.
나의 국문 버전 수정안: 전 세계 음악 차트에서 라틴 팝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은 콜롬비아 출신의 샤키라는 그녀만의 우아함과 한결같은 열정으로 변화하는 음악 시장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뮤지션이다. 데뷔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샤키라는 트렌디한 음악에 댄스 실력까지 가미해 전 세계를 유혹하고 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도록”이라는 영문에 있지도 않은 문구를 굳이 넣어서 해당 뮤지션에게 나이값을 매길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해야 할 이유가 되는가?
‘무색하다’의 표준국어대사전 정의는 다음과 같다.
‘겸연쩍고 부끄럽다.’ 내지는 ‘본래의 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보잘 것 없다’
즉, 글쓴이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상태가 겸연쩍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붙인 것인가?
한국어의 존칭어법 때문에 상대 나이에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사고구조를 가진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찬성하는 것은 아니고).
그러나 젊은 나이, 겸연쩍은 나이, 늙은 나이 등으로 나이를 구분하고 나이에 따라 상대에 대한 시각을 달리가지는 태도에 대해서는 강력히 저항하고 싶다.
또 다른 문구로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고 건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노래하고 춤춘다”로 드러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노골적으로 여성에게 요구하는 “아름답고 건강한 육체”에 대한 압력을 이런 기사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세뇌시키고 있다.
뮤지션에 대한 기사에서 굳이 아름답고 건강한 육체를 강조할 필요가 있나? 영문에서는 그녀의 노래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매력을 풍기고 노래 실력 외에 댄스 실력까지 겸비한 샤키라만의 특징을 언급했을 뿐인데, 굳이 여기서 외모를 언급해야 할까?
거기에다 “예나 지금이나”를 덧붙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노화화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완벽한 외모를 가져야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우리 사회가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아름답고 건강한 육체”에 대한 압력을 이런 기사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내면서 사람들을 세뇌시킬 뿐이다.
공공기관이나 특정 집단이
나이에 연연하고, 나이로 차별하고, 외모에 집착하고, 외모로 차별하는 경우,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항의하여 교정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미디어에서 알게모르게 불필요한 개념을 전파하고 강화하는 경우는 별다른 제제없이 대중에게 전파된다.
글쓴이도 이런 사회적 압력에 눌려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저렇게 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기사가 영 눈에 거슬려서 한 마디 안 남길 수가 없었다.
No to Ageism! No to Look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