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서남부 도시 브로츠와프[Wrocław] 전경

언어는 소통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와 정서가 반영된 정신세계를 형상화해 놓은 일종의 부호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기에 배운 외국어는 아무리 유창하게 잘 한다고 해도

어렸을 때부터 그 문화에서 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모국어와 같은 정도의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그 언어를 좋아한다고 해도 각 단어가 지니는 뉘앙스나 어떤 문구가 전달하는 무형의 힘을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욕설에 관련된 단어나 문구이다.

보통 외국어를 배울 때 욕이나 야한 농담, 짖궂은 표현 등을 재미로 배우게 되거나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주로 쉽고 짧은 문장일 뿐더러, 해당 언어를 배우기도 전에 이미 영화나 소설책 등에서 많이 접해서 익숙해져 있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영어의 d***, f***, sh**, b****, m*****f***** 등이다.

그런데 모국어가 한국어인 사람이 실생활에서는 한국어로 욕을 평생 해 본 적 없고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도

영어로는 재미로라도 욕설이 담긴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평생 한국어로는 추악하고 저질스러운 표현을 혼잣말로라도 중얼거려 본 적이 없는데,

영어로는 거리낌없이 위에 나열한 말들을 장난으로 혼자서, 내지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농담으로 쓰기도 한다.

물론 밖에서는 쓰지 않는다.

그런데 한글로는 유사한 욕설 조차도 거북하게 느껴지고 불편한데

영어로는 단어들이 가지는 희화화된 느낌 외에 진정 저 단어들이 가지는 진짜 의미가 한글로 된 욕설이 지니는 거북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밖에서 영어 욕설을 쓰지 않는 이유는 단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에 쓰지 않을 뿐

한국어로 욕설을 쓰지 않는 것과는 다른 이유이다.

한국어로 욕설을 쓰지 않는 이유는 그 단어나 문구들이 가지는 의미나 분위기 등이 소스라치게 역겹고 욕설이 풍기는 거북함이 진짜이기 때문에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이런 욕설들이 사용되는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그 문화권 내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에 그 욕설들이 지니는 거북한 힘이 진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폴란드어로 가장 흔한 욕설인 kur**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재미로 다양한 조합으로 이를 내뱉으며 농담처럼 사용했는데, 폴란드인 남편이 진심으로 불편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인도 영어로는 저속한 말을 나와 함께 내뱉으며 농담도 같이 하는데

내가 kur**를 말할 때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에 남편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그 말을 알아버린 사실 자체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본다.

그러던 중 최근 어느 날 여행 중에 투숙하던 호텔 방번호가 1803이었을 때, 숫자 18을 한글로 읽으면 욕설이 될 때도 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걸 알게 된 남편이 종종 엘리베이터를 타면 숫자 18을 볼 때마다 장난기 가득 담아 18을 한글로 읽기 시작했는데

한국어가 모국어인 내가 듣기에 아주 불편했다.

아하! 그 순간, 내가 폴란드어 욕설을 하면 폴란드어가 모국어인 남편이 왜 그렇게 불편해 하는 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 차이가 바로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하하…그래서 그 이후, 재미로라도 kur**라는 문구를 연습하지 않기로 했다.

본인이 배우고 있는 외국어로 욕설을 거리낌 없이(마음이 불편해지지 않고) 할 수 있다면 아직 그 외국어와 당신의 거리는 꽤 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