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기 쉬운 습관 vs. 들이기 힘든 습관

고향인 포항에서 찍은 사진. Jolly Roger를 내걸고 다닐 만큼 장난기 충만한 어부(혹은 진짜 바다 위 깡패일지도)들이 많은 포항.

수능 직후 부모님께서 주신 용돈으로 통기타를 샀다. 기타 학원을 다니거나 선생님을 찾아봐야지하는 생각보다 서점에 가서 통기타 책을 몇 권 사고, 클래식 기타 교본을 한 권 샀다. 처음으로 고향인 포항을 떠나 서울행 버스에서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그 통기타를 안고 미래에 펼쳐질 일을 생각하던 풋내기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기타는 기숙사 한 구석에 쳐박힌 후 한 번도 제대로 빛을 발해본 적이 없었다. 바로 쉽게 무언가 연주할 수 없었기에 통기타는 그냥 장식품으로 존재하다가 결국 먼지가 쓸어 어느 순간 버렸던 것 같다. 악기에게 미안했지만, 내게 무용지물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바이올린을 배워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바이올린을 구입한 후 명동 근처에 있는 학원에 등록했다. 첫 선생님을 잘 만났어야 했는데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알고 보니 첼로 전공이라 바이올린 연주법은 제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바람에 두 번째로 만난 개인 레슨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레슨은 주로 잘못 잡힌 습관의 교정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기타나 피아노와 달리 바이올린은 악기 소리를 내기까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까다로운 악기이었다. 결국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현재 1-2년에 한두번씩 바이올린을 쳐다볼 뿐이다. 그러나 해마다 “매일 30분~1시간씩 바이올린 연습하기”는 새해결심으로 적어둔다(실행을 하지 않을 뿐).

바이올린 레슨을 받던 무렵, 우연히 회사 동료들과 롹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바이올린을 조금 연주할 줄 알고 한 때 통기타를 가지고 있었단 이유만으로 세컨 기타 및 보컬을 맡았다. 벼락치기 방법으로 연습한 끝에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을 빌려 90분간의 단독공연까지 했다. 그러나 여전히 실력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에는 무대에 선다는 기쁨과 설레임에 관객으로 온 회사 동료 및 상사들의 괴로움이 어느 정도였을 지 상상을 못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아마츄어들이 하는 다른 공연에 관객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내가 했던 공연보다 훨씬 훌륭한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는 이내 과거 우리 밴드의 공연에 초대했던 사람들의 인내심과 예의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들이 인내해야 했던 괴성과 잡음을 생각해보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그 후로 어디 가서도 예전에 내가 롹밴드를 했었니하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블로그를 통해 처음 밝힌다.

2019년도 새해결심에 따른 매일 시간표. 그러나 지키지는 않고 있다.

서울재즈아카데미(SJA)에서 재즈 기타 수업을 1년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수업도 의미가 없는 법이다. 합주나 숙제를 위해 악기로 참여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예전처럼 벼락치기로 손가락 테크닉을 잠시 외워둔 후 비참한 수준의 플레이로 잠깐의 위기를 모면하여 겨우 졸업하였다. 연습을 아예 안 했으니 나는 아직도 기타 코드 반주도 제대로 못 하는 생초보일 뿐이다. 아마도 SJA의 동료 학생들 또는 선생님들은 대체 나 같이 연습도 안 하는 인간이 왜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기타를 배우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슨 배짱인지는 몰라도 굳이 악기를 연주할 수 없어도 음악을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지 아직 절절히 원하는 그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기타나 바이올린에 다가설 수 없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악기는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 악기 연주 자체가 음악의 핵심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전에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성격인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헛소리이다.

“게으른 자의 변명인 것이다.”

내가 진정 음악적인 정신으로 충만하다면 지금 당장 이런 헛소리나 늘어놓지 말고 음악을 하고 있어야 한다. 작곡을 하던, 작곡법을 공부하던, 기타를 만지작거리던 음악에 빠져 있어야 한단 말이다.

즉, 나는 음악인으로서 자질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어젯밤에 꾸벅꾸벅 잠이 쏟아지는 데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의미하게 인터넷 포털 기사를 여기저기 클릭하는 내 모습을 인지한 순간,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왜 매일밤 생각 없이 핸드폰으로 무의미한 컨텐츠를 기웃거리는 것인가?

그 순간 꽝!하며 든 생각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잡다한 세상사를 옅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핸드폰 보는 습관은 들이기 쉬운데 왜 음악에 다가가기 위한 작은 행동(악기를 통해 음악하기)은 습관으로 정착시키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그냥 습관화하면 되는 것인데, 이것이 왜 이리 어려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몇 가지 장애물을 건너뛰기 게으른 마음 때문인 것이다.

2019년 3월 14일에 스쿨뮤직에서 주문했던 깁슨 SG Special 2018 Natural Satin 모델, 배송받은 후 3일 후에나 개봉해서 한 번 만져보았다. 그만큼 나는 게으르다. 악기를 가질 자격이 없는 지도 모른다.

정말 올 연말에는 적어도 한두곡 정도는 악보 없이 완주도 하고, 즉흥 연주도 곧잘 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보자는 생각에 나의 게으름을 분석해 보았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기타 연습방 정리하기
  2.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어 렉에 세워두기(케이스에서 꺼내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케이스는 기타 연습으로 이어지기까지 상당한 심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3. 일상적으로 연습할 교재 선정 – 김승환 선생님의 교재가 좋겠다(링크).
  4. 연주곡 선정 – Lady Pank의 Wciąż Bardziej Obcy

9월 30일까지 과연 내가 몇 번이나 연습을 했고, 과연 기타 연습을 습관화하는 데에 성공했는지 여부를 이 포스트에 덧붙여볼 예정이다. 십년 가까이 생각만 해 오고 실천을 안 해서 대체 나는 왜 이럴까 어이없어 하다가 이런 발악을 해보는 것이다. 이래도 내가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는 내 음악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생각을 뇌 속에서 깨끗이 덜어내야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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