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의 실행

십대 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이후 나는 최대한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왔다.

무소유의 철학에 너무 일찍 노출이 되어서일까? 나는 평균적인 여성들이 다들 가지고 싶어하는 디자이너의 가방이나 신발 등에 크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구입하지 않는다.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예전에 어쩌다 사 둔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더 이상 사지 않는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나는 참 도움이 되지 않을 고객일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보여주는 패션의 아름다움은 즐길 수 있다.

나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와 같은 장신구 역시 구매하지 않고, 귓볼에 구멍을 뚫지도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야 겠다는 기대도 전혀 없었다. 우리는 반지 대신 타투를 새겼다. 반지 안쪽에 세균이 쌓이는 것을 상상하는 것으로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결벽증이 한 몫을 한 것도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두벌만 해도 누군가의 월급을 넘을 수도 있는 드레스를 사던 습관을 버리고, 이제는 일 년에 옷을 사는 일이 한 번 있을까 말까이다. 물론 기능성 운동복은 필요할 때 최소한으로 구입한다. 나의 일부 헤진 옷을 보면 조선 시대에 우연히 제주도에 상륙했던 하멜 일행이 생각난다. 하멜의 표류기를 읽다보면 하멜 일행이 당시 의복 부족으로 엄청나게 힘들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 걱정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요즘, 그들이 헤진 옷 때문에 고생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먹는 데에 있어서도 불교 승려들이 수행하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한다. 특별히 외식을 하지 않는 이상, 밥상에 2-3가지 반찬이 올라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된장찌개 내지 김치찌개와 같은 찌개 하나만 두고 밥과 함께 먹는다. 밥에 콩과 잡곡을 넣어 영양을 보충하고, 간혹 생선을 먹는 정도이다. 엄마가 반찬 한 두가지를 보내주시는 날은 적어도 3첩 반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밥상을 잔칫상으로 부른다. 그리고 부페는 피할 수 없는 약속이 아닌 이상 가지 않는다. 현대인들이 부페에서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고, 많은 음식이 먹지 않고 버려지는 상황을 보는 것도 괴롭기 때문이다. 공장식 농장에서 길러졌을 것임이 뻔한 육고기는 근 이십 년간 피할 수 없던 상황 몇 번(손님 초대)을 빼고는 집으로 주문한 적이 없고, 밖에서도 고깃집은 아예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육식을 반대하거나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채식을 실행한다. 그러다보니 어쩌다가 음식에 포함되는 고기(쌀국수의 고기)는 감사히 먹는다. 고기를 안 먹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이제는 고기가 누군가의 살점으로 보여 조만간 100% 채식을 할 수도 있겠다 싶다.

가구 역시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사지 않았다. 소파도 없이 휑한 거실을 보시고 부모님들이 사 주겠다고 하실 때, 소파가 있으면 오히려 우리가 스트레스 받는다는 것을 주장한 끝에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몇 년전부터 인간관계에 있어 미니멀리즘을 강력히 실행했다. 학연, 지연, 혈연, 그리고 업무와 연관된 모든 이들에게 나의 진짜 목소리 대신 그들이 기대했던 모습, 사회가 내게 정답이라고 제시했던 모습에 맞추어가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내 에너지를 갉아먹고 내가 진심으로 가고자 하는 길에서 나를 멀어지게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인을 만족시키고 체면을 지키며 살려는 무의미한 노력은 내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 나의 진짜 짝을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그를 만나고 난 후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중요한 것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중요한 사람과 중요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 최고의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각종 동기 모임과 대학원 모임 등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회사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의 원칙을 적용했다. 사실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그저 그들이 나보다 연장자라는 이유 만으로, 싫어도 싫다는 말을 못 했었다. 그래서 그들이 오해한 것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일을 병행하면서 음악 사설학교를 다닐 때 지인들은 “음악은 취미로 해” 내지 “가끔 현실 감각이 없는 것이 네 문제야” 이런 식의 의견만 내었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관심을 두며 물어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모임에 계속 불려나가고 주최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내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도 지인들을 위해서도 공정하지 않은 생각이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삶의 테두리 안으로 그들을 초대하는 일을 그만두자 그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들이 내게 관심이 있다면 어떻게든 노력을 했겠지만, 그러지 않았고 나 역시 공통 관심사가 없는 그들과 관계 유지나 개선을 위해 더 노력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기도 했다. 사은회, 동기모임, 직장인들 간 사교모임, 각종 동호회 모임 등에 나가지 않고, 소셜미디어에 지인들이 올리는 의미없는 포스트에 반응하지 않고, 관례 상 하는 인사를 하지 않는 이 실험을 한 지 약 3년이 되었다. 이 실험을 통해 나는 그간의 인간 관계의 깊이가 얼마나 얄팍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안부를 묻지 않자 내게 먼저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깊이감 없는 관계였던 것을 왜 나는 그간 몰랐던 것인가?

“한 번 봐야지? 언제 오면 연락해.”라는 말이 영혼없이 내뱉은 말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나는 보고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반드시 언젠가는 만나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 정작 만날 기회를 만들려고 하면 약속을 구체적으로 잡는 인간이 거의 없었다. 모두 내게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대들에게 더 이상 나를 쉽게 만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만남이라는 것은 쌍방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왜 많은 이들은 내가 늘 시간이 많고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언제나 이런 말을 듣는다. “언제 근처에 오면 사무실로/학교로/연구실로 와. 한 번 보자!” 진정 보고 싶다면 쌍방이 모두 시간과 에너지를 쓸 각오를 하고 만나려는 자세를 보여야지, 본인의 장소에 들러주면 잠시 담소나 나누자는 정성없는 초대에 왜 응하겠는가? 나는 공중 화장실을 쓰기 싫어해서 집이나 호텔 밖에서 2-3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는 것은 큰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회사 워크샵으로 어떤 산을 타기 전 모두가 김밥과 물을 먹을 때 나는 먹는 것을 최소로 하고, 산을 타는 도중에 화장실 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물은 일절 마시지 않았다. 여태껏 살면서 간이 이동식 화장실에 들어간 기억은 한 번 밖에 없다. 그 후로 나는 외부에 오래 있어야 할 경우, 약간의 탈수가 될지언정 음료수를 잘 마시지 않는다.

내 일정은 어느 누구의 일정보다도 더 바쁘고 할 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멍 때리고 있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무 생각도, 아무 행위도 안 한 채 덩그러니 앉아있어 본 적도 없고, 잠을 7시간 이상 자 본 적도 없다(보통 3~5시간 잔다). 그런데 그간의 내 지인들은 모두 한결같이 내가 움직이기를 바랬다. “내가 이러저해서 지금 못 나가. 우리 집으로 와라.” 한 두번은 이해해줄 수 있는데, 매번 그랬는데도 나는 “싫어요, 사실 당신을 만나서 재미있지도 않고 예의를 차려 당신을 대하는 데에도 지쳤어요. 왜 당신은 1-2시간이나 떨어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할 시간은 있고, 내게 올 시간은 없나요? 나는 미용실 갈 시간도 내기 힘들어요.”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기 이 블로그에 이런 말을 쏟아내고 싶은 것이다. 익명의 블로그이지만, 인터넷 공간에 오픈되어 있다는 것이 일종의 통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친구가 거의 없는 나는 이 블로그가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모두가 나를 떠나고 친구 한 명 없더라도 나는 괜찮다. 어느 누구보다도 혼자서 할 일이 가득하고, 외로움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대면할 능력이 있다. 게다가 참 행운이기도 하고, 진정한 행복이기도 한 것이, 나는 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인간관계의 미니멀리즘을 실천한 결과, 이 매정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갈 내 인생의 동반자와 보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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