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브로츠와프의 그놈들

브로츠와프 시립 콘서트홀 밖에 있는 오케스트라 gnome들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에 가면 시내 곳곳에 작은 조각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우연히 고개를 틀면 창틀에도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난쟁이 조각상들을 마주칠 수 있다. 이런 작은 조각상을 gnome이라고 부른다. Gnome은 유럽인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온 이야기에 등장하는 존재로, 지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 형상을 한 흉측하게 생긴 작은 괴물들이다. 한국인들이 도깨비같은 존재를 상상해 내었듯이 말이다.


지금은 이런 gnome들이 브로츠와프를 방문하는 여행가들에게 인스타그램 사진용 볼거리로 여겨지지만, 이런 gnome들이 시내 곳곳에 자리를 잡게 된 되에는 뜻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Soviet Union의 감시 하에 유지된 공산당 정권이 1989년까지 이어졌다. 공산당 정권 하에서 당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출할 수도 없고, 끊임없는 검열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숨막히는 사회 분위기는 1980년대 초 계엄령 시행으로 인해 더욱 억눌리게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억압적인 상황이 오히려 더 강력한 반체제 운동을 분출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폴란드의 반공산주의 운동으로는 1980년 9월에 레흐 바웬사에 의해 그단스크(Gdańsk)에서 시작된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 운동(Solidarność)을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그러나 이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1981년 12월 13일 계엄령 발령으로 반정당 신문사와 저널리스트들이 대거 폐업을 당하거나 구속됨으로써 Solidarność를 비롯한 모든 반정당 운동은 지하조직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억압적이고 위험한 분위기 속에서 본인을 드러내놓고 반정당 운동을 벌일 수 없었으므로 지하운동 단체는 주로 반공산당 슬로건을 낸 그라피티를 길거리에 그려놓음으로써 대중들의 목소리를 전달하였다. 흔히 “Solidarność는 죽지 않았다!”, “Solidarność는 계속 가야 한다”와 같은 메세지를 남김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공산당 정권은 이런 그라피티를 가리기 위해 군인들에게 그라피티 위에 덧칠할 것을 명령하였고, 그 결과 거리의 벽 곳곳이 하얀 페인트 자국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한편 당시 브로츠와프 대학교에서 예술사학 전공생이었던 Waldemar Fydrych(Major로도 불리기도 함)와 그의 동료들은 군인들이 남겨 놓은 페인트 자국 위에 형형색색의 모자를 쓴 난쟁이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는 브로츠와프 뿐만 아니라 Łódź, Warsaw, Kraków, Szczecin 등으로 퍼져 나갔다. 이것이 바로 Orange Alternative(Pomarańczowa Alternatywa)라는 이름을 가진 지하운동 단체가 시작한 평화적, 예술적 반체제 저항운동의 시작이었다. Pomarańczowa Alternatywa라는 이름은 1980년대 중반에 붙여졌고, 이는 브로츠와프 대학교 내 예술 잡지 이름에서 따오게 되었다. Pomarańczowa Alternatywa의 리더 Waldemar Fydrych가 저술한 책에서 그의 초창기 아이디어를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벽에 지속적으로 표현하라고 독려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의 목소리를 덮어버리기 위한 공산당 정권의 흰색 덧칠도 늘어날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도시의 풍경을 바꿀 수 있다.
  • 흰색 덧칠이 늘어나면 날수록 난쟁이들의 숫자도 늘어나게 되고, 이는 (사람들의 단결 측면에서) 양적인 증가에서 질적인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 난쟁이(gnome)들을 출현시킴으로써 초현실주의적인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Pomarańczowa Alternatywa 일원들은 이렇게 벽에 gnome들을 그림으로써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그들의 견해를 표출하였고, 이후 포스터나 팜플렛을 길거리에 뿌리며 일반인의 참여를 유도하여 길거리 행위 예술을 통해 반공산주의 운동에서 반체제, 반기득권 주의(anti-establishment) 등의 이념을 표출하였다. 그들의 위트넘치는 아이디어의 일례를 소개해 본다.

Pomarańczowa Alternatywa는 길거리에 다음과 같은 메세지가 담긴 전단지를 일차적으로 뿌렸다. 예를 들어, “같이 참여해요!”, “오세요, 후회하지 않을거에요!”, 또는 유머를 담아 “당신은 백설공주(gnome을 모티브로 한 시민운동이기에 일반 대중을 일곱 난쟁이로 가정한 유머라 생각됨)보다 못하지 않아요, 적어도 눈의 여왕(Snow Queen: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강력한 힘을 가진 매정하고 무서운 여왕)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런 후 집회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전단을 다시 뿌렸다. 1988년 3월 1일에 뿌린 전단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검은 안경과 모자, 검은 트렌치코트 또는 가죽재킷, 아니면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나오세요(당시 비밀경찰을 묘사하기 위한 유머인 듯). 도청장치 장비를 가지고 나오세요. 우산이나 지팡이에 연결한 마이크 정도면 좋겠네요(끊임없이 감시당하는 삶에 대한 풍자로 해석됨). Scotland Yard(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의 중앙청)를 좋아한다면 담배 파이프를 물고 나오세요(역시 비밀경찰에 대한 풍자). 개를 데리고 나오면 더 좋겠네요. -중략- 자유롭게 행동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세요(공산당 정권 하에서 수시 검문을 당하는 일상을 풍자하기 위함인 듯).”

이런 식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참여 전단지를 배포한 후 사람들이 모여들면 실제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마치 놀이에 참여하듯 각자 나름의 즉흥적 반응을 보이며 한바탕 소동(happening)을 만들어 내었다. 사실 이것을 집회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데, 왜냐하면 이런 모임들에서 요구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았고 누군가가 앞서서 어떤 행동을 주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대중의 참여를 포함한 행위예술이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예술을 통한 정치적 메세지의 전달 행위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87년 6월 1일에 어린이의 날을 맞아 Pomarańczowa Alternatywa 활동가들은 직접 만든 난쟁이 모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초콜렛과 사탕을 나눠주었고 사람들은 난쟁이 복장을 한 채 돌아다니며 어린이의 날을 축하했다. 그런데 바로 옆 중앙시장 광장에서는 당시 공산정권 집권당(Polska Zjednoczona Partia Robotnicza, PZPR) 창당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어린이의 날은 무시한 채 PZPR 행사를 하는 집권당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면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위해 모이는 것인데 뭐라 할 수 있겠냐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어떤 해악도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을 위한 모임에 군경찰은 난쟁이 복장을 한 사람들을 체포하며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그 이유는 그런 모임이 잠정적으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경찰의 이런 반응은 사람들의 분노를 더욱 끓어오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는데, 사실 Pomarańczowa Alternatywa는 군경찰이 그런 어이없는 강경책을 쓸 것이라 예상하였을 것이고, 그렇기에 군경찰의 이런 반응 자체도 Pomarańczowa Alternatywa가 계획한 행위예술의 일부가 되게 되었다.

이들은 수 많은 happenings을 기획하며 사람들의 참여와 공감을 불러내게 되었고, 사람들은 gnome을 모티브로 한 happenings을 통해 그간 억눌려 왔던 표현의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아래 영상에 보면 빨간 모자를 쓴 난쟁이처럼 다 함께 거리로 나가는 happening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드러내놓고 빨간 모자를 쓰기가 두려웠던 사람들은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채 나오거나 케쳡을 뿌린 바게뜨빵을 들고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경찰은 바게뜨빵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체포해 갔다고 한다.


Łodz Film School 채널에서 공개한 당시 영상. 이 영상을 만든 제작팀 학생들과 학교 모두 당시에 엄청 고생했다는 설명이 영상 소개란에 있다. 군경찰은 카메라를 끄라고 명령했으나 카메라를 든 학생은 이를 계속 켜놓고 있었기에 당시 체포장면 등도 함께 실릴 수 있게 되었다.

Pomarańczowa Alternatywa의 이러한 활동은 단순히 정치적 저항이나 행위예술이라고 정의하기보다 예술을 통한 정치적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다. Gnome을 활용한 이들의 happening으로 인해 gnome은 Pomarańczowa Alternatywa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고, 또 이들이 활동을 시작한 도시가 바로 브로츠와프(Wrocław)이었기에 현재 gnome은 브로츠와프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Pomarańczowa Alternatywa의 활동을 기리기 위한 최초의 gnome 미니동상이 2001년에 만들어졌고, 그 gnome의 이름은 Papa Krasnal이다.

이미지 출처: File:Papa Krasnal (Papa Dwarf) Wroclaw dwarf 02.JPG …commons.wikimedia.org

Papa Krasnal은 과거 Pomarańczowa Alternatywa의 happening이 자주 일어났던 장소에 세워졌다(Kazimierza 대로와 Świdnicka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 아래 지도에서 붉은 점).


이후 시에서 주관한 일종의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은 gnome 동상들이 곳곳에 만들어졌고, 지금은 각종 업계마다, 학교마다 gnome을 제작해 길 곳곳에 배치해두고 있다. Gnome들 각각 이름과 의미가 있어 브로츠와프를 여행 시 gnome을 찾아 다니는 재미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좋은 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과거의 의미있었던 gnome들의 활동이 퇴색되어 최근엔 gnome 동상을 남발한 나머지 gnome을 악의를 가지고 파괴하거나, gnome을 내놓은 사업체가 파업하거나 이사를 가게 된 경우에는 gnome을 없애거나, 옮기거나 방치하거나 하는 등등의 이슈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에서 운영하는 gnome 찾기 지도에서 실제와 100% 매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도 관심있는 사람은 브로츠와프시에서 운영하는 gnome 찾기 웹사이트 링크를 참고해 보면 좋겠다(https://visitwroclaw.eu/wroclawskie-krasnale).

아래엔 내가 브로츠와프를 방문 시 사진으로 남겨 두었던 gnome을 몇 개 더 올려본다.

비둘기 방지용 바늘이 꽃힌 창가에 비둘기와 인간 Gnome을 배치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수의과대학 내에 있던 수의사 Gnome
중세시대 기사를 의미하는 gnome이지 않을까? 프리랜서의 시초!
요즘의 디지털 노마드를 묘사한 gnome

참고자료

https://culture.pl/pl/tworca/pomaranczowa-alternatywa

Szymanski-Düll, B. (2015). Strategies of Protest from Wroclaw. Journal of Urban History, 41(4), 66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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